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샨 왕조 (문단 편집) == 대승불교와 유목 문화 == 이 지역에서 불교의 새로운 종파가 번성했는데, 바로 동북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대승불교]]이다.[* 다만 대승불교는 남인도 지역에서 출발했고, 중관파의 시조로 유명한 대승불교 승려인 [[나가르주나|용수보살]] 역시 데칸 고원 출신이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불교라고 하면 인도, 중국, 그리고 일본 정도를 떠올리고 중앙아시아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지역은 불교 역사에서 가장 큰 변혁 중 하나인 [[대승불교]]로의 전환을 주도하고 이를 중국에 전파까지 한 중요한 지역이다.[* 간다라 미술의 영향은 말할 것도 없다. [[석굴암]]참고] 흔히들 불교가 아시아만의 종교라 생각하고 유럽 문명과의 접촉은 근대에야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불교가 전파될 당시 중앙아시아 지역은 헬레니즘(그리스) 문화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승불교도 이와 교류하면서 성장했다. 불교와 헬레니즘 문화와의 접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는 《밀린다 왕 문경》(彌蘭陀王問經)으로 [[인도 그리스 왕국]]의 왕 밀린다(메난드로스)와 승려 나가세나의 대화를 다루고 있다. 부파 불교에서 출가자와 재가자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방식은 인도인들에게는 익숙할지 몰라도, 그리스인이나 토하라, 스키타이, 파르티아인들에게는 지나치게 생소한 문화였다. 대승 불교는 출가자와 재가자에 대한 엄격한 구분 계율을 완화시켰으며, 이를 계기로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에게도 불교가 보다 빠른 속도로 보급될 수 있었다. 인도 왕조라고는 해도 도읍은 현재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였고 중심지는 아프가니스탄이었다. [[마우리아 왕조]]를 계승했다기보다는 [[그리스-박트리아 왕국]]과 [[인도 그리스 왕국]]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북인도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셈. 그래서 [[파키스탄]] 및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교 국가이지만 불교 유적도 꽤 남아있었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이러한 불교 문화재들에 대한 [[반달리즘]]을 벌이기도 했다.] [[이집트]]·[[튀르키예]]·[[시리아]] 등 일부 중동 이슬람교 국가에 기독교 유적이 꽤 남아있고, [[알안달루스]] 문명의 지배를 받았던 [[이베리아 반도]]([[스페인]], [[포르투갈]], [[지브롤터]])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발칸 반도]]가 [[튀르키예령]]인 동트라키아를 제외하면 기독교 문화권임에도 불구하고[* [[알바니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무슬림이 대다수인 것과 별개로 기독교가 최대 소수종교다.] 이슬람교 유적이 꽤 남아있는 것과도 비슷한 경우다. 중국에서 기마 유목민의 영향으로 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조무령왕]] 항목 참조.] 인도 스키타이인들과 토하라계 쿠샨인들의 영향으로 인도인들도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형태의 터번[* 모자에 천을 두르는 형태의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무슬림들의 터번이나 시크교도 터번.]은 쿠샨 왕조에서 처음 유행한 것으로 추정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